시스템관리자 2023-11-27 16:25
[주간조선]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이 본 정년 연장 논란 "청년·고령자 상생방안 찾아야"


법정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심사를 받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추진한 ‘65세 정년연장’ 국민동의청원이 마감 하루 전인 지난 9월 14일 청원 목표를 달성하면서다. 청원 규정상 청원서 공개 이후 30일 이내에 5만명의 동의를 받으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로 회부된다. 한국노총은 ‘고령자고용법 제19조’에서 정하고 있는 법적 정년인 60세를 국민연금법에 따른 노령연금 수급개시연령과 맞춰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올리는 방식을 제안했다. 현재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은 63세이지만 2033년에는 65세로 연장된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합의를 위한 대통령 소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거치지 않고 정년연장 입법에 나선 것을 두고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은 “한국노총 조합원만 해도 123만명이 넘기 때문에 조합원만으로도 5만명 동의가 가능하다. 국민의힘은 111석, 나머지는 186석인 ‘기울어진 운동장’을 활용해 입법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대화와 합의를 하고 국민적 공감을 얻기보다는 쉬운 길을 택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18일 서울 중구 경사노위 사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우선 “법적 정년연장을 하면 모두가 65세까지 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상 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유노조 등의 소수만 수혜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2016년 법적 정년이 58세에서 60세로 연장됐지만 통계청이 지난 7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기준 ‘현실 정년’은 49.4세로 법 시행 이전과 유사했다. 현실 정년은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을 그만둘 당시 평균 연령을 말한다. 이는 법적 정년연장이 전체 노동자의 정년연장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증거다. 특히 법적 정년을 채우고 나오는 비율은 전체 임금근로자 중 8.5%에 불과했다.” 

지난 9월 14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공개한 ‘정년 60세 법제화 10년, 노동시장의 과제’ 보고서에 따르더라도 정년 60세를 법제화한 이후 오히려 조기퇴직자가 크게 늘었다. 정년퇴직자는 2013년 28만5000명에서 지난해 41만7000명으로 46.3% 증가했지만, 명예퇴직·권고사직·경영상 해고 등으로 발생한 조기퇴직자는 32만3000명에서 56만9000명으로 76.2% 늘었다. 경총은 “정년 법제화가 기업의 임금 등 직접노동비용은 물론 사회보험료, 퇴직금 등 간접노동비용 부담까지 크게 늘린 것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법적 정년을 65세로 늘리면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정년연장은 대기업 노조 등 노동귀족들이 주장하는 사안”이라며 “들어온 지 1년도 안 돼서 사람이 나가는 중소기업에는 정년연장이 이슈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대기업 노조들이 최근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에서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최근 임단협 잠정합의안에서 정년연장 안건이 최종적으로 빠졌지만, 우리 사회의 정년연장 논의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 

 

정년연장,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시켜

김 위원장은 “정년연장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비용”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연공형 임금체계상 은퇴시기가 되면 통상 생산성은 낮아지고 임금은 올라간다. 정년연장을 하면 65세 노동자의 임금이 가장 높을 뿐 아니라 퇴직금도 5년 더 일한 만큼 늘어날 것이다.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사업자가 기업을 운영하기 힘들어지면 신규 채용도 못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5년 동안 청년은 거의 안 뽑는다고 봐야 한다.” 정년연장이 청년 고용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2021년 경총이 한국, 일본, 유럽연합 15개 회원국 등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30년 이상 장기근속 근로자 임금이 근속 1년 미만 근로자 임금보다 2.9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공형 임금체계를 채택한 일본(2.27배)은 물론 독일(1.8배) 프랑스(1.63배) 등 유럽 주요국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청년도 언젠가 나이를 먹기 때문에 미래에 더 오래 일하고 돈을 벌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니냐’고 묻자 김 위원장은 “애초에 대기업, 공기업·공공기관 등 좋은 곳에 청년이 못 들어가는데 미래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법적 정년인 60세를 채우고 퇴직하는 8.5%가 일하는 곳은 청년들이 정말 가고 싶어 하는 일자리다. 현대자동차에는 장기 근속하는 고령층이 많다. 이들이 퇴직해야 청년 인재들이 들어갈 수 있는데 노조 조합원들은 자기 기득권만 지키고 있다. 지금은 경제 성장기가 아니라 경제 침체기다. 정년연장을 안 한 지금도 (좋은 일자리에) 들어갈 문이 없는데 정년까지 연장하면 어떻게 되겠나.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숨이 콱 막힐 것이다.” 

그렇다고 김 위원장이 무조건적으로 정년연장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일부만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고령층이 실질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라며 “정년연장을 한다면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직무성과급제나 임금피크제 등을 활용해 기업의 고령자 고용 비용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경사노위는 지난 7월 ‘초고령사회 계속고용 연구회’를 발족해 ‘계속고용’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계속고용은 기존 근로관계 청산 후 재고용 등을 통해 고용이 연장되는 것을 말한다. 김 위원장은 “정년 후 계속고용 시에는 원래의 근로관계를 끝내고 재고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임금수준 등을 포함한 근로조건에 변화가 생긴다”고 말했다. 

연구회는 해외 사례 등 다양한 계속고용 방안들을 심도 있게 논의해 연말쯤 연구 결과를 정부에 제시할 예정이다. 경사노위는 일본의 ‘고령자 고용확보조치’에 주목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은 고령자 고용에 따르는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법정 정년은 60세이면서 계속고용, 정년연장, 정년폐지 중 한 가지를 기업이 선택해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도록 했다. 김 위원장은 “계속고용을 하면 고령자의 임금이 조금 줄어들 수는 있지만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지 않으면서 고령자는 계속 일할 수 있다”며 “서로 일자리를 빼앗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상생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년연장 문제를 청년 일자리 문제와 연결 지을 만큼 김 위원장은 청년에 대한 관심이 높다. 경사노위는 9월 20일부터 전국 각지의 다양한 청년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청년 경청 콘서트’를 시작했다. “요즘 일자리에 관한 청년의 절망이 크다. 일자리에 대한 전망이 없다 보니 집도 못 사고 아이 낳을 생각도 못 하고…. 개인적으로 청년의 절망을 줄여주는 것이 국가에 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은 “진짜 절망하는 청년, 밑바닥에 있는 청년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도울 수 있는데 (청년 이미지를 내세우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늘 뻔한 소리만 한다”고 덧붙였다.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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