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관리자 2023-12-12 15:06
[헤럴드경제] 일자리 늘었다지만 ‘취업·이직 모두 어렵다’…삭막한 2030 취업시장
일자리 87만개?…고령층 일자리만 대폭 늘어
2030 청년 채용시장 작년보다 ‘더’ 얼어붙었다
청년들 “공채·모집 인원 줄어” “중고신입에 밀려”
이직 시장도 먹구름…“다니는 곳이나 잘 다니자”
1~2년씩 취업과 이직 준비를 해왔지만 줄어든 일자리와 양질의 일자리 부족에 20대 청년들이 좌절하고 있다. 우울증과 좌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내년도 ‘또’ 백수 예약입니다. 올해 지원한 곳들 싹 다 떨어졌거든요. 정말 우울해 죽겠어요. 다시 원점에서 시작할 거 생각하니 착잡해서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혀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취업에 실패했다는 대학생 A(25) 씨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A씨는 최근 2년 동안 30개 넘는 국내 기업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면접 등의 전형에서 불합격을 받았다. 그때마다 A씨는 동아리, 학회, 대외활동, 공모전, 인턴 등 대학교 입학 이후부터 꾸준히 쌓아온 경험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 되는 기분이라고 했다. A씨는 “올해는 채용 공고도 많이 안 뜨고 모집 인원도 확 줄어 작년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것 같다”며 “매일 매일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일자리가 늘어났지만 2030 청년 채용시장의 먹구름은 걷히지 않고 있다. 일자리 증가세는 청년층이 아닌 고령층이 견인했기 때문이다. 늘어난 일자리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1%대에 불과하다. 청년 취업난이 심화하면서 2030세대에선 ‘더이상 버텨낼 힘도 없다’, ‘포기하고 싶다’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6일 발표한 ‘2022년 일자리 행정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일자리는 2645만개로 1년 전보다 87만개(3.4%) 증가했다. 하지만 이 중 절반은 60세 이상의 고령층 몫이었다. 지난해 60세 이상 일자리는 44만개 늘어 전체 증가분의 절반 이상(50.4%)을 차지했다. 늘어난 일자리 2개 중 1개는 고령층 일자리인 셈이다. 이어 50대(26만개), 40대(10만개), 30대(5만개) 등 순으로 증가했다.

반면 20대 이하 일자리는 단 1만개 늘어,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작은 증가 폭을 보였다. 국내 인구가 줄어든 데다 젊은층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탓으로 풀이된다. A씨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겠다거나 청년들이 일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등의 말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된 지 오래”라고 한탄했다.

1년 6개월 동안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모(27) 씨도 지난해보다 올해 더 채용시장이 얼어붙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금융 기업 등에 취직하고 싶어 지난해 여름부터 관련 자격증을 따고 스터디를 꾸려 공부하고 있다. 또 최근엔 면접 학원도 등록했다. 이씨는 “취업준비생으로서 할 수 있는 별의별 노력을 다해도 어느 한 곳에 합격하기 쉽지 않다. 다들 똑같이 별의별 노력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씨는 또 “내가 열심히 준비해 가도 중고신입한테 밀리는 경우가 많다”며 “가끔씩은 ‘이렇게 해도 안될 텐데 시간이랑 돈만 축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청년층의 취업 어려움은 한국경제인협회의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달 22일 전국 4년제 대학 재학생 및 졸업(예정)자 3224명을 대상으로 ‘2023년 대학생 취업인식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 대학생들의 졸업생 예상 취업률은 49.7%로 집계됐다. 대학생들은 취업 준비 과정의 어려움으로 ▷경력직 선호 등에 따른 신입채용 기회 감소(26.3%) ▷원하는 근로조건에 맞는 좋은 일자리 부족(22.6%) ▷체험형 인턴 등 실무경험 기회 확보 어려움(17.2%) 등을 꼽아 일자리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이직 시장 역시 어두운 상황이다.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1년 전 다니던 마케팅 회사를 나온 윤모(26) 씨는 아직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상태다. 윤씨는 “퇴사할 때만 해도 새 직장을 구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며 “주변에서 ‘아직 어리니 기회가 많다’ ‘새로 시작하기에 전혀 늦은 나이가 아니다’라고 격려해주지만 점점 초조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윤씨는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 잘 지내냐고 연락이 올 때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라고 했다.

취직도 이직도 쉽지 않아지면서 채용시장의 진입 관문이 높아지자 최근 기업 내에선 ‘리텐션(Retention·유지)’ 기조가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B(29)씨는 “업무량도 많고 사내 분위기도 수직적이라 지금 다니는 회사가 절대 맘에 드는 건 아니”라면서도 “한층 더 얼어붙은 채용시장에 뛰어들 자신이 없어 그냥 버티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기업 인사팀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재취업 시장 상황도 악화되다 보니 이직률이 점점 줄고 있다”며 “지금은 현상 유지만 잘 해도 절반의 성공이란 인식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an@heraldcorp.com

[출처] 헤럴드경제(12.11.) 원문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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